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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지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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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rsion

몰입

Digital Virtual Space

 



디지털 가상공간 '몰입'은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 대구미술의 지역성과 역사성, 현대적 실험성을 상징하는
작가 15명의 47점을 연구하여 6편으로 제작된 실감 콘텐츠 프로그램입니다.

운영개요

  • 운영기간

    24. 2. 20.(화) ~ 24. 12. 31.(화)
    ※ 미술관 개관일 운영

  • 운영장소

    대구미술관 3층

  • 참여인원

    10명/회차 
    ※ 단체 25명 사전예약 가능

  • 소요시간

    15분 내외/회차당

운영시간

  • 10:00
  • 10:30
  • 11:00
  • 11:30
  • ※ 평일은 단체 우선
  • 13:30
  • 14:00
  • 14:30
  • 15:00
  • 15:30
  • 16:00
  • 16:30
  • 17:00
  • ※ 12:00~13:00 점검시간, 접수없음

참여방법

단체

- 대구시통합예약시스템 사전예약 필수

(평일 10시 25명, 11시 25명)

개인

- 당일 선착순 현장 신청

(평일 오전 단체관람 우선)

※ 신청한 시간 5분 전에 ‘몰입’ 입구에 도착하시기
바라며, 영유아는 보호자 동반 입장바랍니다.
※ 대구미술관 입장권을 소지하더라도 <몰입>
전시공간 현장에서 당일 회차별 참여가능 인원 초과시
참여가 불가능
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이용문의: 053-430-7531

작가소개

작가소개 - 구분, 작가, 내용
구분 작가 내용
이인성의 생애와 예술세계 이인성 이인성은 1928년 수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동진이 경영하는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수채화 지도를 받았다. 같은해 10월, 개벽사가 주최하고 동아일보 학예부가 후원한(소파 방정환의 기획)《세계아동예술 전람회》에서 수채화 작품 <촌락의 풍경>으로 특선에 입상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세모가경>을 출품하여 특선을 받고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1935년 귀국할 때까지 양국을 오가며《향토회》전과 조선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한다. 특유의 독자적인 화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너무 일찍 요절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으나, 이인성이 남다른 감수성과 재능, 역량을 가진 화가였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대구 근대 풍경으로의 초대 서동진 서동진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나 1924년 모교인 계성학교의 도화 강사직을 맡았다. 이후 ‘회화전문연구’를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고, 1930년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 단체인 ‘향토회’ 그룹을 창립하는 등 서양화 도입기 대구 미술계에서 수채화를 발전시킨 공로자로 인정받고 있다.
김우조 김우조는 1923년 달성군 옥포면 출생이다. 화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계성중학교로 진학해 당시 5년제 중등 과정을 다녔다. 그곳에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부임해 온 서진달 선생을 만나 미술을 배우면서 큰 감화를 받았다. 교편생활을 하며 주로 판화 작업을 했고, 1988년 정년퇴직 후 대구 봉덕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작업에만 매진했다.
실험과 상상, 그리고 미술하기 곽인식 곽인식은 1919년 달성군 현풍면 만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곽인식은 중등부를 수료한 후 18세에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미술학교를 수학했다. 1942년 귀국 후, 대구 미나카이 백화점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1949년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한국 국적의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계열 미술가협회가 연합한 《연립미술전》을 기획했고, 1969년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하면서 한국미술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박현기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196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당시 유명한 건축가인 김수근 선생의 영향으로 건축과로 전과해서 대학을 졸업했다. 대구현대미술제 창립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78년 이강소, 최병소, 김영진 등 세 명의 작가와 K스튜디오에서 국내 첫 비디오 영상 작업을 시도했다. 1990년대에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현대미술제와 비디오아트에 대한 열풍으로 박현기의 활동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강소 이강소는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으로 소삼령 선생을 만나며 이때부터 반 동겐(Kee Van Dongen)의 수채화나 세잔(Paul Cezanne)의 풍경에 심취했다. 미술에 대한 자기 정립이 꽤 일찍 형성된 이강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운회’를 조직하고, 대구역 옆의 시민회관 1층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했다. 1975년 제9회 파리비엔날레, 1977년 제1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하며 한국현대미술의 부흥을 이끌었다.
최병소 1943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병소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 남산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신문을 지우는 최병소의 작품은 1975년 제2회 대구현대미술제에 소개되었고, 1977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을 통해 신문 작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국실험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식되었다. 신문지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선을 그어 활자를 지우는 행위로 제작된 《무제》 연작은, 1970년대 한국 현대사회의 동시대성을 이끌며 한국미술의 자산으로 고유성과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주와 맞닿은 풍경 곽 훈 달성군 현풍면에서 태어난 곽훈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로 이주했다. 우주의 상호 교감 세계와 인간의 시간을 작품에 담고자 하는 그는, 에스키모인들의 고래사냥 연작 《할라잇》을 통해 샤머니즘적인 우주의 원천과 흐름을 나타냈다. 곽훈은 지금도 울주군의 암각화를 생각하며 고래의 삶을 상상하고, 그 안에 흐르는 거대한 생명의 윤회와 기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
김호득 김호득은 195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반 활동을 꾸준히 했던 그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보라는 부친의 권유로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와 동양화를 고루 익혔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폭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점과 획을 통해 ‘점찍기’와 ‘선 그리기’ 등 회화의 기본 요소들을 수행하듯 그려나갔다.
권부문 1955년 대구 출생의 권부문은 중학교 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화가의 삶을 기대했지만,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하면서 예술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탐구해온 작가이다. 권부문은 1975년 서울의 신문회관과 대구백화점 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 전시는 이후 그의 작업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권부분은 대상과의 상호작용과 본질적인 관계를 사진에 담아내며, 동아시아적인 관점을 체현한 대표적인 현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삶을 그리다, 놀이를 그리다 정점식 1917년 경북 성주 출생의 정점식은 대구 남성로 약전골목에서 한의사를 하는 고모부 아래에서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며 자란 덕에 글씨와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1936년 조선민보사 주최로 대구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남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면서 대구화단에 등단한 그는, 교육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1964년 계명대학교에 미술학과가 설립될 때부터 1983년 퇴임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전선택 전선택은 1922년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으로 1942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1954년 대구 경상중학교에 부임하면서 생활의 안정과 함께 새로운 예술적 출발을 시작했다. 1982년 ‘한국신구상회’를 창립하고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뿌리내리며 긴 시간 창작에 전념했다.
이명미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명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화가로서의 삶을 꿈꾸었다. 이명미는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동경화랑과 명동화랑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실험작가전과 서울비엔날레전 그리고 대구현대미술제 등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며 집단지성이 모여 시대적 변화를 미술로 실천하는 단체에 동참한다.
마음을 담은 풍경 서병오 1862년 대구에서 출생한 석재 서병오는 학문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의술, 약재에 대한 지식까지 겸비하여 환자를 치유하는 등 여러 방면에 두루 능통했다. 1922년, 영남 지역의 주요 서화가들과 함께 쇠퇴해가는 서화 전통을 부흥시키고자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조직하고 첫 서화전람회를 개최했다. 서화가들의 전국적인 교류와 교육 활동의 장을 마련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으며, 대구 서화미술을 되살리고 새로운 서양화단의 발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종복 1930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종복은 1972년 파리 유학길에 올라 그랑 쇼미에르에서 수학하고, 파리 국립미술학교 특수응용미술학교 도안과 대학원 과정을 수학했다. 1974년 세계적인 화랑인 앙드레 베뉴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유럽 화단에 등장했고, 1975년 귀국하며 현대화랑에서 귀국전을 개최했다. 사생에 토대를 둔 김종복의 풍경화는 구도의 과감함과 창의적인 색채 활용에서 매우 독보적인 존재라고 평가받고 있다.

월별 운영 내용

디지털 가상공간 <몰입>

운 / 영 / 안 / 내

  • 이인성의 생애와 예술세계

    어둡고 척박한 시대를 그림으로 살다 간 천재화가

  • 대구 근대 풍경으로의 초대

    서동진, 김우조

  • 실험과 상상, 그리고 미술하기

    곽인식,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 우주와 맞닿은 풍경

    곽훈, 권부문, 김호득

  • 삶을 그리다, 놀이를 그리다

    정점식, 전선택, 이명미

  • 마음을 담은 풍경

    서병오, 김종복

아래의 운영내용은 예정이며, 미술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 1주 6회 콘텐츠 순차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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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업데이트
2024-07-09